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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에, 그토록 갈구하던 워낭소리를 봤다. 우호호
홍대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하루에 딱 3번 상영하는데,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려 했으나..
카드 가맹점이 아닌 관계로 에러... 결국 중간에 잠깐 가서 예매하려는데 2시까지 점심시간ㅠㅠ
(왜 점심시간이 1시 15분 ~ 2시 인거야? 비상식적인 식사패턴으로 인해 나는 25분간을 바로 옆 소품매장에서
기웃기웃 거려야 했고.. 또 결국엔... 뜻하지 않게 핸드폰고리를 충동구매하고 말았다)

총 50석도 안되는 작은 상영관인데, 이미 거의 대부분의 좌석은 팔려나간 상태다.
작년에 과제 제출때문에 인디영화 보러왔을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개념의 단계. 와우.. 정말 대단하구나..

보고싶은 영화가 생기면 느끼게 되는 설렘이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잊혀져가는 마당에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처음 그 순간부터 끌리기 시작하더군.. 이야기, 음악, 사람들, 그리고 초록색 떼깔까지..



사실.. 이 영화에 쏟아지고 있는 최근의 폭발적인 관심은 많이 의아한 편이다.
이 영화 말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본 적이 있었나?? 학부 4년 교양과목을 통틀어서도 숱한 영화관련 수업을 들었음에도 난해한 플롯과 형이상학적인 구성, 실험적인 편집이 난무하는 독립영화뿐이었다. 
이 영화와 같이 순하고 착한, 순박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는 이게 처음이었다.

사실 다큐멘터리라는 것 자체가 영화라는 장르안에서는 그 성격이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하면.. 그것도 친절히 영화관이라는 곳까지 직접 가서 돈까지 지불하고 본다고 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영화를 소화함에 있어서 일종의 강박관념에다 의무감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분명 뭔가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을거야.. 화면은 모두 구조화되어 있고.. 단서도 놓치면 안돼!! 즐겨야 한다구!!" 이런 대중상업 영화의 광들에게 돈을 내고 친히 극장에까지 나아가서 다큐멘터리를 보라니. 그러한 편견은 나에게는 이미 몇 해전 마이클 무어에 의해서 깨어졌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같이 마법과도 같은, 강력한 울림이 전해지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영화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현란한 편집과 구성, 재치있는 나레이션 등 과는 180˚ 다른 생(生)날것의 뭉클함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아주 본능적인 감성. 한 도시의 바쁜 일상에 지쳐서 숱한 경쟁과 반목만을 강요하는 이 시대의 숙명으로 인해 외면해야만 했던 우리들의 본질적인 따뜻함과 사랑, 우정, 배려가 있다.


더 이상 무리를 해서 일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누구보다도 더 잘 알면서도, 할아버지도 소도 그렇게 쉽게 손에서 일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겐 서로 40년을 함께하면서 걸었던 길, 고된 노동, 그 모든 것이 그대로 자신들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어느새 늙고 병들어 이젠 숙명과도 같은 죽음을 인정해야할 시간임에도 그것은 그들에게 전부였으니까. 할머니의 숱한 잔소리와 신세한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것. 그게 그 삶의 방식이니 말이다.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두통에 괴로워하는 할아버지의 이마를 따뜻하게 감싸는 할머니의 손길에서, 행여라도 제초제를 먹지는 않을까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번거롭게도 매번 짚을 썰어 쇠죽을 끓이는 그 노고에서, 우리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살아있는 그 것. 생(生)날것의 뭉클함을 본 것이다.



1960년 한국을 찾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은 농부가 볏단을 실은 소달구지를 끌면서 자기도 지게에 볏단을 지고 가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농부는 자신의 지게를 달구지에 실으면 편하고 좋을텐데.. 소의 짐을 덜어주려는 저 마음이 내가 한국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서로 30년 이상의 긴 세월을 함께하면서 진정으로 상대를 생각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구나.




결국 소는 할아버지 곁을 떠나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허전한 곁을 지키는 마당을 가득 채운, 수도 없이 높게 쌓인 땔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뒤로하고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음악에 여운을 느끼며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내가 느끼고 내가 받은 감동과 전율에 비해 너무나 짧고 협소했다. 수백억의 제작비를 호가하는 대작영화의 그 끝도 없는 엔딩크레딧은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물질, 투자대비이윤, 즉 돈이 만든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그리고 오늘. 더 오랜시간 감흥에 젖어있길 원하는 이 영화의 너무도 짧았던 엔딩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일은 결코 물질과 돈으로 이뤄낼 수 없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워낭소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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