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햇살이 내려쬐다가도 이따금 축축하게 비가 내리는 그 날씨의 탓일수도 있고 의욕이 가득 차올라 일주일째 수영장을 다니다가 어디선가 정체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을거다. 어제 목이 좀 칼칼한 가운데에도 학회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를 한게 역시나 오바였던지 하루종일 콧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콧물감기가 들렸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콧속으로 약물을 쇽쇽 뿜어넣는 치료를 받고 돌아와 하루치 약을 6시간만에 집중 내복하고 나서 헤롱헤롱 거리는 심신을 안고 이 영화를 관조했다.
사랑을 부르는 파리(Paris, 2008)
원제가 'Paris'인 이 영화는 내내 건조하고 맹맹하지만 활력은 아니래도 삶의 설레임쯤은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구성적인 면에서 최근의 러브 액츄얼리와도 같은 예전 그 테마게임(MBC의 테마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의 구성을 지녔지만 러브 액츄얼리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처럼 인물들간의 인과관계가 극적인 요소로서 덜 적극적이고 (극단적으로는 이러한 장치가 불필요하게까지 보인다.) 이야기의 중심을 쥐고 풀어내는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외양에서 이 영화의 전체를 풀어내는 감독의 의도로서 오버랩된다.
그래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이야기에서 꼭 필요한 사건을 쥐고 있기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 파리라는 도시를 구성하는 인물들 중 무작위로 선택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파리라는 도시를 좀 더 역설적으로 의미하는 영화가 되었고 감독은 제목을 'Paris'라고 지었을 터. 역시나 그들에게 파리라는 도시는 타지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관광지가 아니라 자신이 오늘도 숨을 쉬고 걸음을 내딪고 눈물을 흘리며 낄낄 웃음도 터트리는 삶과 생의 공간인 것이다. 그 안에는 당연 사랑과 행복이 있고 그리움과 눈물도 있으며 태어남과 죽음도 공존한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영화의 본질을 생각하면 '사랑을 부르는 파리'라는 제목을 갖다붙인 이의 심정이 참으로 애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째서 파리라는 동네는 '사랑'만 뭉게뭉게 피어오를 수 있단 말이냐? 다만, 로맨틱하게 들리는 그 제목이 마케팅을 해야하는 세일즈맨의 심정으로는 더 탁월했을터. 그래도 그렇지. (결론적으로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니, 그 꼼수는 대실패임) 감독은 괜히 원제를 노멀하고 맹맹하게 지었을까? 그 의도 자체가 오류인 관계로 이 영화는 원제를 그대로 살렸어야 했다.
이 영화의 것 그대로 감독의 조근조근하고 낭낭한 공기를 그냥 그대로 나의 일상과 대비하여 체득하자면 그건 또 공감 반 비공감 반 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좌절감이 그리 짧을 수만은 없을테고, 거부된 사랑의 상처가 또 그리 쿨할 수만은 없을테니까. 근데, 또 다만 그러한 감독의 인간사를 향한 터치가 유쾌한 삶의 한 이면이라면. 뭐 어차피 내가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에 굴하지 않고 흘러가는게 또 세상의 삶이니, 결국 이게 아니러니고 인생이고 그게 그거인거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공감 반 비공감 반, 아이러니와 동질감, 거기서 거기, 애매모호함으로 뒤죽박죽이다.
아. 참! 영화를 보면서 내내 키득거렸다. 어쩜 그렇게 그 인물들의 삶의 순간순간이 감독을 만나 보석처럼 반짝반짝 유쾌해질 수 있을까? 정말 이게 파리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지게 만든다니까. 누구의 말처럼 이 영화는 파리를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파리에서 한번쯤 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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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런.. 줄리엣을 불리엣이라고 했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