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도 않을 지난 사랑의 무게에 힘겨워하던 그런 사람이 있었다.
갑작스런 동창모임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을때 그녀가 그 자리가 가기 싫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세 가지.
첫째. 어디론가 가기엔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둘째. 하필 오늘은 머리도 안 감고 너무 초라해서 누구라도 만나기 싫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그 자리에 그가 올지도 모르니까.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한번 가볼까 생각했던 이유도 세 가지.
첫째. 비가 와서 술 한잔 생각이 간절했으니까.
둘째. 오랜만에 보고 싶은 친구들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그리고 마지막. 그 자리에 그가 올지도 모르니까.
그녀에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고 싶기도 하고 보면 안될 것 같기도 한 한번쯤 만나고 싶기도 하고 다신 만나고 싶지 않기도 한.
어떤 마음이 더 컸던 걸까.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몇 대나 보내고서 그녀는 결국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두근대는 심장은 오랜만에 만날 친구들 생각때문이겠지.
가기가 조금 꺼려지는 마음은 역시 머리를 감지 않아서 겠지.
조금 처지는 기분은 아무래도 비 때문이겠지.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떠오르는 모든 감정의 이유를 그녀는 모른척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이 버스에서 내릴 것 같으니까.
약속장소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은 바쁘게 그를 찾는다.
열 몇 명쯤 되는 반가운 얼굴들 사이에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와 마주치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함과 그래도 한번쯤 할 얘기는 없어도 한번쯤 하는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와 마주앉았던 친구가 문 쪽을 바라보며 어.. 너... 한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게 누군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와는 대각선으로 마주 앉은 자리에 그가 앉는다.
이미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만 그녀가 그가 앉은 자리와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친구와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주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만다.
반갑다. 오랜만이네. 신기한 일이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오랜시간 가슴에 묻어둔 감정의 봉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녀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아무 연락 없이 그녀를 떠났는지.
친구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처럼 그때 그의 마음속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는지.
누군가의 추측처럼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녀를 이용했다는게 맞는지.
그의 대답을 듣기전에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젠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알게 된건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와 그녀가 그런 얘기를 나눌 시간은 아주 오래전에 이미 지났다는 거.
그녀는 그에게 술잔을 건넸다.
술잔과 함께 다른 친구들에게 하듯 가벼운 농담과 웃음까지 함께 건네며
이제야 비로소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겁기만한 해묵은 마음을 덜어내고서야 새로운 마음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그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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