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끝에 다다라 혹은 서른에 접어들면 누구나 결혼을 꿈꾸고 안정된 직장과 단란한 가정을 꾸릴 희망에 부푼다. 이들에게 이 영화가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네 안에 있는 진정 행복한 삶이란 그것이 다가 아니야.."
결혼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도 역시 그러하지. 진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이상 그리고 현실의 이중적 잣대는 늘 그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고 조바심나게 하며 삶의 방향성 마저 상실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의 미래에 관한 주변사람들의 충고는 대부분 좋은 학벌과 철밥통과도 같은 안정된 직장으로 시작해서 그들이 정상적인 항로라고 주장하는 완벽한 결혼과 안정된 가정으로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다.
열변을 토해내는 그들을 향해 나는 언제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하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라 인생의 모든 목적이 결국 물질적인 안정과 경제적 여유로 귀결되는 그 이야기는 나를 이내 완전히 매료시키고 만다. 종속되고 만다. 그 이야기안엔 늘 나의 꿈이나 이상적인 삶의 목표, 보람, 직업적 자부심 같은건 애당초 언급조차 되지 않는데 말야. 그도 그럴것이 내게 꿈이나 이상을 물어보던 인생의 조언자들은 이미 초등학교를 다니던 꼬마시절이 지나자 연기처럼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늘 그들이 강요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면 어쩌나 조바심내면서.. 꼬마시절 언젠가 가을 운동회 무렵.. 만국기를 대신해 펄럭이던 꿈이 그려진 나의 이상향은 오늘에 이르러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매년 오스카가 할때 즈음이면 늘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영화들을 찾아보는게 일인데, 이게 올해엔 무슨 조화인지 케이블에서도 생중계를 보이콧하고.. 겨우겨우 아프리카TV로 abc의 실황을 보고, 그렇게 이번엔 멀리멀리 관심밖으로 달아나나보다 하고 있는데 케이트 윈슬렛이 그 뒷심을 발휘했다. 뭐 사실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을 다 보지못했지만 체인질링의 안젤리나 졸리도 그녀 본래의 툼레이더나 미세스스미스의 강렬한 이미지와 대비되는 가녀린 크리스틴 콜린스를 적절하게 잘 소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성적인 강약조절이 유연하고 인물의 깊이를 연기하는 탁월한 능력의 케이트 윈슬렛 앞에서 그녀는 일단 몇년간 더 절치부심해야 할 듯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생의 조언자를 잘 선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셈 멘데스는 아무래도 늘 케이트의 곁에서 작가의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온갖 어드바이스를 다 해줄 것이므로. 다만 안젤리나 졸리의 경우 핸섬한 브래드 피트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할때마다 파파라치들을 고려하느라 온갖 시간을 다 허비하고 있는 줄도 모르지. 뭐 이건 물론 99% 농담임)
(왼쪽 윗줄부터 잭 도슨, 로즈 도슨, 에이프릴 윌러, 프랭크 윌러)
타이타닉호의 대참사 속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잭이 로즈를 데리고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이사라도 온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속의 디카프리오는 가난 속에서도 열정이 충만했던 젊은 화가 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영화속의 프랭크는 늘 반복되는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속에서의 구원과 일탈을 꿈꾼다. 지루함은 잠시잠깐의 외도도 된다. 프랭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갈등하고 있는 인물이다. 반면에 에이프릴은 자신의 꿈이 깨짐과 동시에 시작된 이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 아마도 잭을 만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온 로즈는 그 현실안에서 그 본래의 보헤미안 케릭터를 지울 수가 없는 것. 만약에 당신이 11년만에 다시 보는 이 둘의 모습에서 과거의 낭만을 찾으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 (아핫 물론 셈 멘데스의 숨은 의도까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런 기대쯤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라고 하고 싶다. 그런 낭만적인 그림에 대한 기대쯤 차디찬 대서양의 바다 가운데나 던져버려!! 이 영화는 이 둘이 내내 지지고 볶고 싸우는게 반이란다.
하지만 둘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일찍이 그들이 타이타닉호를 타고 건너온 대서양을 다시 가로질러 파리로의 일탈을 꿈꾼다.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계획을 알리며 맥없던 일상에 봄날의 훈풍을 불어 넣는다. 하지만 이들의 주변 사람들 어느 하나 그들의 계획을 반기거나 옹호하는 사람이 없다. 이웃해 살고 있는 절친 부부는 충격과 환란에 가까운 눈물까지 보인다.
이 젊은 부부를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안내한 복덕방 아주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은 바로 케시 베이츠. (여기서 셈 멘데스의 의도에 관해 한번 더 의심을 품자면 그녀는 이미 세속으로 가득찬 타이타닉호의 일등석 칸에서 유일하게 잭과 로즈를 이해하고 감싸주었던 밀리 브라운 여사였던 것. 다만 그녀 역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오래 살아서 인지는 몰라도 영화 막판 참으로 얄밉게도 군다)
(왼쪽부터 헬렌 기빙스 여사, 밀리 브라운 여사)
이 아주머니가 에이프릴에게 부탁하는 그의 아들 존은 수학적인 재능은 가졌지만 사회부적응의 정신병력을 가졌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그들의 계획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존. 프랭크와 에이프릴 역시 존과 마찬가지로 미친걸까?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그 순간 에이프릴의 대사가 마음을 울린다.
"미쳤다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이라면.. 나는 미쳐도 상관없다."
누군가 어디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삶의 무료와 허무함이 극에 달아 우울함에 동화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상하게도 가뿐한 느낌이다. 뭐랄까? 예방접종이라도 받은 느낌이랄까? 어느 누구나 현재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는 삶이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가능한 사람이 이상한거지. 호주 퀸즈랜드의 어느 섬에서 한가로이 사진이나 찍으며 유랑을 하는 댓가로 6개월에 1억 4천만원이나 주는 꿈의 직업을 가졌다한들, 간사한 인간에게 그 많은 돈도 영광도 모두 다 지나면 소비되고 연소될 것들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가치와 이상향을 찾아 나아가는 것. 미친놈이란 소리를 듣는다 한들, 이 세상사람 모두와의 경쟁에서 홀로 도태되어 늘 부족한 삶을 살아간다 한들, 삶의 가치는 적어도 나이를 먹고 흔들의자에 앉을 무렵은 되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벌써부터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만을 쫓아 나약하고 비겁한 삶을 살기에 인간의 삶은 그리 길지 않다. 지나고 나서 프랭크처럼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말이다.
아메리칸 뷰티의 셈 멘데스는 자신의 아내를 내세운 이 영화에서 역시나 대단히 맹렬한 모습이다.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불필요한 사족없이 두 사람에게 닥친 태생을 알 수 없는 비극을 찬찬히 깊이있게 조명한다. 디카프리오는 11년전 그 곱디고운 용모가 온데간데 없는 얼굴에다 울상까지 하고 앉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11년이란 세월이 쌓은 깊은 내공이 보인다. 얼핏얼핏 보이는 이마의 주름만큼이나 그의 프랭크가 오늘에 이르러 나에겐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브래드 피트의 벤자민 버튼에 결코 뒤질 것이 없는데도 이번 오스카에서 후보에 조차 오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이러니. 다만 이미 여러해에 걸쳐 오스카가 그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력을 감안할때 오스카가 그에게로 가는 날이 분명 멀지 않은 듯해 보인다. 케이트 윈슬렛만 보아도 5전 6기 정도는 해야 오스카가 그녀를 허락하니 말이다. (다만, 그녀는 The Reader를 통해 오스카를 수상했다)
영화는 결국 그들을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의 시끄러운 잡음을 누군가 조용히 꺼버리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엔딩 크레딧이 다 멎을때까지 혼자서 먹먹하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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